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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마라톤, 일반인도 ‘기록’ 있어야 참가
“저는 330(풀코스 마라톤을 3시간 30분 이내에 완주)을 달성해서 내년에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는 게 목표에요.”
‘미국 보스턴을 말하나? 보스턴에서 마라톤?’
혼자 달리면서 기회가 되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왔다. 마라톤 완주는 하지만 기록은 늘 4시간을 넘겼다. ‘4시간 벽을 깨볼 순 없을까?’ 열심히 연습해도 4시간 안으로 완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마음에 달리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고 2016년 서울 동아 마라톤을 앞두고 ‘오픈케어 100일 카드론 한도 프로젝트’ 훈련을 함께하게 되었다. 훈련 첫날에는 안동에서 상경했는데,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서울 동아 마라톤 대회 목표를 말하는데, 또래 여성 러너가 구체적인 목표 설정과 함께 당찬 포부를 말하였다. 다른 나라에 가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건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매년 4월에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면 피디수첩부산저축은행 성별로 각 연령대의 기준기록을 만족해야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메이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면 한 해 전부터 접수 경쟁이 치열하고 어려움이 있다. 10년 전인 당시만 해도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자 하면, 경쟁 없이 참가비를 내고 신청하면 수월하게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도 먼저 까다롭고 높은 기준기 한신저축은행 록을 통과해야 접수비를 낼 자격도 주어진다니 ‘거참, 희한하다’ 싶은 마음이 드는 시절이었다.



2018년 9월 베를린 마라톤. 필자 제공


대회 진행 체계적, 응원도 열정적
매년 마라톤에 대한 경험을 10월 스위스 넓혀가며 보고 듣는 게 많아지면서 나도 해외 마라톤을 참가하게 되었다. 2017년 일본 오사카 마라톤을 참가했는데, 규모 있고 체계적인 대회 진행과 열정적인 시민들의 응원이 인상 깊었다. 차차 세계 6대 마라톤 대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도쿄, 보스턴, 런던, 베를린, 시카고, 뉴욕 6개 대회를 모두 완주하면 이를 인증하는 메달과 기록증이 차량유지비 비과세 나온다. 올해부터는 시드니 마라톤 대회가 추가되어 세계 7대 마라톤이 되었다.
매년 달리다 보니 마라톤 기록이 단축되었고, 세계 6대 주요 마라톤 신청 자격 기준을 충족하게 되면서 2018년 9월 베를린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다. 2017년 가을 춘천 마라톤에서 얻은 3시간 28분 9초 기록으로 2018년 베를린 마라톤 대회를 신청하여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2019년 4월 보스턴 마라톤, 2023년 3월 도쿄 마라톤, 2023년 9월 시카고 마라톤, 2024년 4월 런던 마라톤을 차례로 완주하였고 2025년 11월 뉴욕 마라톤에 참가할 계획이다.
경사·기후 좋은 베를린, 기록의 산실
베를린 마라톤 대회는 세계 6대 마라톤답게 대회 규모와 운영이 그동안 참가했던 대회와 차원이 달랐다. 대회 전 방문한 엑스포도 흥미로웠다. 국내 대회는 배번과 완주 기념 티셔츠 같은 기념품을 택배로 보내 주지만, 해외 마라톤 대회에서는 대회 전 열리는 엑스포에서 나누어 주기 때문에 대회 참가를 위해서는 엑스포 방문이 필수이다. 드넓은 엑스포장에서는 각종 이벤트와 대회 홍보 부스, 제품 판매 부스, 기념사진 촬영 공간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 당시의 나는 동영상으로 대회 코스를 보여주면서 경기 운영 팁을 설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판매 부스에 마라톤과 관련된 제품이 다양하고 많은 것을 보고 그만큼 마라톤 동호인이 많다는 사실이 반갑고 흥미로웠다.
베를린 마라톤 코스는 주로 경사가 완만하고 기후가 대체로 좋은 편이다. 덕분에 참가 선수들의 기록이 잘 나오고 세계 신기록도 나오곤 해서 ‘기록의 산실’로 불려왔다. 내가 참가했던 2018년 베를린 마라톤에서도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케 선수가 2시간 1분 40초로 남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시작할 때 기온은 선선하였고 구름 없이 해가 뜬 하늘이었다. 출발 후에는 살짝 덥기도 했다. 베를린 마라톤은 5만여 명이 참가하는 대회라 시작할 때부터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출발 전 스타트 구역에 대기하면서 나보다 20~30cm 이상 키가 큰 러너들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각 나라의 언어들이 내 머리 위 하늘에서 울렸다. 말을 알아들을 순 없어도 모두 한껏 들뜨고 흥분된 느낌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러너라는 이유로 통하고, 마라톤 하나로 공감되며 함께하는 경험은 새롭고 즐거웠다.



2018년 9월 베를린 마라톤. 필자 제공


러너에 휩쓸리고 군중에 파묻힌 ‘구름 위 질주’
베를린 마라톤은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출발하여 전승기념탑을 지나 베를린 미테 구역, 크로이츠베르크, 쇤베르크 구역, 카이저 빌헬름 교회 등 베를린 시내를 돌고 돌아 42.195km를 달려 브란덴부르크문을 통과하고 마치는 코스이다. 5만여명이 참가자들을 기록에 따라서 알파벳 순으로 조를 나누고 다시 알파벳 조를 wave 1,2,3으로 그룹지어 순차적으로 출발하였다. 당시 330기록(3시간30분 이내 완주)을 가지면 E조에서 wave1로 출발할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자가 많아도 어느 정도 지나면 주로에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스타트부터 피니시 지점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할 때까지 내내 어마어마한 군중 속에서 달렸다. 처음 12km까지는 세계 각국 러너들에 휩쓸려 구름 위에서 달리는 듯했다. 주로 양옆 인파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응원도 참 인상적이었는데 말은 달라도 그 에너지는 전해졌다. 베를린 마라톤에서는 유난히 밴드들의 연주 응원이 많았는데, 달리는 사람도 응원하는 관람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약 5km 지점마다 물과 바나나, 비트 주스를 보급받고 27km 지점에는 에너지젤을 받을 수 있었다. 물과 음료는 자원 봉사자들이 러너들에게 한 컵씩 직접 건네주며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물과 음료 모두 재생 가능한 플라스틱 컵에 담겨 있었는데 물을 마시고 도로에 던져진 컵이 밟히며 ‘찌그락 째그락’ 나는 소리가 음악처럼 경쾌하게 들렸다. 수백명의 러너가 한번에 지나며 나는 발자국 소리와 플라스틱 컵 밟히는 소리가 굉장하여 녹음해두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보는 상황과 관점에 따라 난장판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2018년 9월 베를린 마라톤. 필자 제공


모든 것은 나를 나아가게 하는 바탕이 된다
베를린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나무 그늘이었다. 시내의 나무들이 크고 우람하다 보니 드넓게 그늘이 졌다. 해가 쨍쨍한 곳도 넉넉한 나무가 드리우고 있어서, 달리는 동안 더위가 식히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30km 이후부터는 즐겁고 신나는 마음도 잦아들고,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서 피니시 라인이 빨리 가까워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남은 거리가 10km, 5km 줄어드는 것에 ‘내 인생의 베를린 마라톤이 끝을 향해 가는구나!’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힘든 고비를 넘고 41km 구간을 지나니 드디어 브란덴부르크 문이 보였다. 문을 통과하면서 저절로 양손이 번쩍 들렸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관람객의 환호를 받으며 드디어 고대하던 피니시 라인을 밟을 수 있었다. ‘아이고, 장하다!’ 그렇게 베를린 마라톤부터 세계 6대 주요 마라톤(The World Marathon Majors 6 star) 여정이 시작되었다.

#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은?

세계 6대 메이저 베를린·보스턴·도쿄·시카고·런던 마라톤을 포함해 50여 차례 국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가 연재하는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전문은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김 교수가 20년간 달리기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깨달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의 회복’을 원하는 독자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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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연재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SERIES/3322

김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