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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연구원이 지난 2012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110㎿급 가압경수로 SMR 실험설비.



수백개의 파이프로 연결된 설비 한가운데에 둥근 소형 원자로가 있었다. 실험을 위해 실물 크기로 제작된 모형이다. 현장을 안내한 권혁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는 "소형 원자로라고 하면 자동차에 싣고 다닐 정도의 사이즈로 생각한 사람들이 실물을 보면 다들 놀란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설비 전체 높이만 27m에 이른다. 하지만 대형 원전 규모와 비교하면 20분의 1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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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이 들어선 파이프 사이로 증기발생기, 냉각펌프기, 압력기 등 핵심 설비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돼 있었다. 곳곳에 숨어있는 각종 계측기로 연구진은 설비 정보를 확인하고 안전테스트를 거듭한다. 이곳이 대전 원자력연구원의 소형모듈원전(SMR) 설비 실험실이다. 지난 2012년 세계 최초로 110㎿급 가압경수로 SMR을 개발해 낸 곳이 새마을금고 연봉 여기다. 지난 13일 현장을 들러봤다.
한때 세계 에너지 시장을 움직였던 원전 강국들이 지금 앞다퉈 달려들고 있는 SMR 시장의 첫 개발국이 우리나라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점은 많다. 실험실에서 만난 이영준 박사는 "세계의 원전 암흑기에 우리는 중단 없이 연구하고 건설과 시공을 지속적으로 이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곱씹어 볼 대목이다 대출상담신청 .
한국이 SMR 연구에 뛰어든 게 1997년이다. 원전 불모지 한국에 원전 씨앗이 뿌려진 게 1970년대였다. 한국 원전은 1980년대 기술축적기를 지나 1990년대 들어 기술자립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절 한국 표준형 원전(OPR 1000)이 나왔고 한울 3~6호기, 한빛 5, 6호기 등이 이 설계로 지어졌다. 한국 신형 민법 제565조 원전(APR 1400)이 완성된 2000년대는 한국 원전 기술이 급속히 고도화되던 시기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신형 원전), 2010년 요르단(연구용 원자로) 수출 쾌거로 이어졌고 해외진출의 기반과 실력이 확 올라갔다.
전후 원자력으로 에너지 패권을 거머쥐었던 미국과 유럽의 현장은 사뭇 달랐다.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린 미국의 도치 스리마일섬 사고(1979년)와 작업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촉발된 러시아 체르노빌 참사(1986년) 이후 서방은 장기간 원전 포비아에 시달렸다. 국가마다 예정됐던 원전 계획이 철회되면서 원전기업들의 시공능력은 퇴화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이후 원전 건설을 온전히 해낼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원전 후발국인 중국뿐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였다. 한국의 SMR 연구와 세계 첫 성공은 이 시기에 이뤄진 기록이다.

SMR의 개념은 대형 원전을 작게 만들어 안전성을 극대화하고 부품을 공장에서 모듈로 생산, 현장에서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용화 초기에는 대형 원전에 비해 단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모듈화와 대량생산이 본격화되면 학습효과가 축적돼 판이 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대형 원전 1기당 건설비용이 5조~10조원가량 든다. SMR이 자리를 잡으면 기당 1조~3조원, 건설 기간도 대형원전의 4~5년 대비 절반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논설실의 뉴스 진단] 세계 첫 'SMR' 개발하고도


원자로와 주변 핵심 기기들이 배관으로 연결된 대형 원전과 달리 SMR은 일체형이다. 노심과 증기발생기, 펌프 일체를 하나의 압력용기 안에 다 밀어넣어 사고 대응력을 높였다. 발전용수도 적게 들어 해안이 아닌 내륙에도 건설이 가능하다. SMR의 안전성과 입지조건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로 전력 수급이 급한 글로벌 빅테크가 천문학적인 투자를 SMR에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서방의 원전 암흑기를 끝낸 동력은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로 봐야 한다. 서방의 원전 복귀가 시작된 게 2010년대 후반이다. 과거 원전 강국들이 대형 원전보다 SMR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물론 복합적이다. 앞서 원전을 개척하는 국가들은 이미 부품 조달과 제조 경쟁력에서 후발주자들에 밀린 상태다. 그 대신 초기 원자로 개발에 관여했던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의 인재풀은 여전히 자산이다. 권혁 박사는 "이들을 활용해 3세대, 4세대 SMR 설계를 주도하고 승부를 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수요처도 다양하다. 주민 수용성만 해결되면 내륙의 데이터센터 인근에서도 손쉽게 조립이 가능하다.
순서로 따지면 우리보다 한 박자 늦었던 미국과 유럽, 중국의 SMR 투자는 지금 거침이 없다. 정부와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시장을 급속도로 키운다. 미국의 오픈AI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투자한 SMR 스타트업 오클로는 '미래의 테슬라'로 불린다. 오클로는 극소형 고속원자로를 개발 중인데,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미국의 엑스에너지사는 고온가스 기반의 4세대 SMR을 개발 중이다. 정부 주도형인 중국은 자체 SMR인 ACP-100 실증을 마치고 하이난성 창장에서 건설에 착수했다. 러시아는 세계 최초로 SMR 기반의 해상 부유식 원전을 운영 중이다.
복잡한 원전 인허가 규제도 앞다퉈 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미국 원자력 르네상스'를 선언하고 연방정부 토지 내 원전 건설, 미국 내 우라늄 채굴, 농축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용량을 현재의 4배인 400GW로 늘릴 계획이다. 신규 원전 건설 심사는 18개월 내, 기존 원전의 가동연한 연장은 12개월 내 승인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미국 원전기업들이 다시 뛸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다시 우리의 SMR을 보자. 2012년 개발에 성공해 표준설계 인가까지 받았으나 여러 이유로 실증로 건설로 이어지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폭풍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영향이 컸다. 정부는 지난 2022년에서야 세계 원전 르네상스 복귀에 맞춰 다시 SMR을 추진했다. 기존 SMR을 개선한 혁신형 SMR이라는 의미로 i-SMR이라고 명명했다. i-SMR은 노심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이중, 삼중 안전시스템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가령 내장형 기기를 사용해 제어봉 이탈 사고를 차단하는 식이다. 기존 제어봉의 역할을 대체할 중성자 흡수체와 핵연료를 일체화한 혁신 핵연료도 활용할 예정이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된 설계 안전 보고서 마무리 작업에 지금 분주하다. 연말까지 이를 정부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분량은 18권짜리 8000쪽에 이른다. 정부는 2년 내 추가 개발에 대한 인허가를 결정한다. 순조롭게 허가를 받으면 연구진은 상세설계에 돌입한다. 상용화 시기를 2030년 중반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민간기업들의 협업은 필수다.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개발부터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SMR 파운드리(위탁생산)'를 주도하는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해 HD현대, 포스코 E&C, SK에코플랜트 등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앞으로 인허가 제도 개선, 정부의 핵연료 공급역량 강화 등 과제가 많다.
문제는 정부의 원전 산업 의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신규 원전과 SMR 개발 전망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면서 업계는 다시 탈원전 복귀를 걱정하고 있다. 원전 연구가들의 긴장감도 역력했다. 이대로 연구가 중단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현장엔 i-SMR 테스트를 위한 콘크리트 철근 기초작업이 완료된 상태였다. 정부 허가가 완료되면 이 실험실에 다시 불이 켜진다. 연구진은 "첫 SMR에 성공하고도 이어가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쫓아갈 기회가 아직은 있다"고 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