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천(孟泉) 박건병(朴健秉) 선생은 1892년 철원군 김화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 신소설을 발표한 문인이었던 그는 우리나라에 무협소설이라는 장르가 없었던 시절 중국의 인기 무협소설 ‘강호기협전’을 번역해 연재했다. 만주족에게 지배 당한 한족 청년이 협객이 되어 활약하는 소설을 읽고, 조선인들이 자신처럼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협객’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선생은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해 무장투쟁을 통한 항일운동에 앞장섰으나 구심점인 박용만 선생이 피살되며 동료들과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계림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교육을 통한 구국활동을 이어갔고, 1932년 괴한에게 피살돼 생을 마 바다이야기슬롯 감하기 직전까지 우리말 연구와 소설 연재 등을 통해 민족의 독립혼을 일깨웠다.









■ 문학 통해 민중 자의식 계몽

바다이야기게임2 1919년 가을, 중국으로 망명한 박건병 선생은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한편, 1931년 9월 동아일보에 ‘강호기협전’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첫 회에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연재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선생은 강호기협전을 두고 ‘그 이름과 같이 의기를 가지고 힘센 자를 누르며 약한 자를 붙들어주는 사람의 사적’으로, 1926년 6월 바다이야기예시 출간된 이후 3년 만에 10쇄까지 출판된 인기 장편소설이라고 했다. 작품을 소개한 이유는 만주족에게 지배받는 한족 청년이 협객으로 성장해 세상에서 활약하는 내용이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생은 소설이 순응하거나 불만을 품고도 표출하지 못하는 민중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주인공의 비분강개한 심정이 문약한 이 골드몽 들을 변화시켜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협객’으로 이끌길 바라는 마음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스스로 글 가운데의 사람이 되어보매 기운이 나서 팔을 뽐내고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며 읽다가 말고 술을 한 잔 부어 쭉 들이어 마시기도 하였습니다”고 밝혔으니 그가 강호기협전에 얼마나 몰입했는지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소설은 선생의 바다이야기합법 서거로 60회에서 연재가 중단돼 중국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1961년 대만소설 ‘검해고홍(劍海孤鴻)’을 원작으로 한 ‘정협지’가 김광주에 의해 번안돼 연재되기 전까지 한국문학사에 사실상 무협소설이라는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시도는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선생은 앞서 1912년 가정소설 ‘광악산’을 발표하기도 했다. 강제병합 직후인 1912년 스무 살 청년 박건병은 애국계몽과 구습 타파를 목적으로 창작한 신소설 광악산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작품의 배경인 광악산은 강원도 화천군과 경기 가평군의 경계에 위치한 화악산을 가리킨다. 소설은 그 아래 산골 마을 광악리에 사는 ‘목도지’가 쉰 살에 얻은 외동딸 ‘태희’의 삶을 그리고 있다.

또 박건병 선생이 한글 연구에 힘을 쏟았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정확한 사료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의 피살 소식을 전한 당시 국내 신문 기사들은 선생이 망명 이전 주시경 문하에서 우리말 연구에 몰두했고, 망명 이후에도 김두봉과 함께 우리말 연구를 이어갔다는 점을 비중 있게 전하고 있다.






▲ 조정미(왼쪽) 상명대 연구교수와 한애라 연구자





■ 독립운동 투신과 의문으로 남은 피살

박건병 선생은 철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박용만 선생의 족숙(族叔)으로, 망명 후 박용만 선생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그의 이름이 독립운동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19년 8월 결성된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일명 철원애국단)의 학무국장에 선임되면서다. 철원애국단은 그해 9월 대한민국통합임시정부 성립을 축하하기 위해 선언서를 배포한 뒤 10월 10일 축하연설회와 만세시위를 거행했다. 당시 선생은 군중 앞에서 연설하며 시위를 주도했고, 직후 자리를 피해 상해로 망명했다.
1920년 1월 20일 그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강원도 의원으로 선출됐으나 이내 박용만 선생이 활동하고 있던 북경으로 향했다.
이후 외교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 활동을 비판하고 무장투쟁을 주창한 박용만 계열에 합류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개조파와 창조파 등으로 나뉘어 격론이 벌어졌을 때도 새로운 임시정부의 수립을 주장하는 창조파에서 적극 활동했다.
1924년 8월에는 북경한교동지회 결성에 참여해 기관지 『도보(導報, 앞잡이)』의 창간호부터 보도사원으로 활동했다. 『도보』는 무장투쟁을 통해 절대 독립을 쟁취하고, 파벌을 극복해 대동단결한 한국독립당을 조직해야 한다는 논조를 폈으며, 일제와 타협하는 자치운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선생은 1926년 7월 대독립당 북경촉성회 집행위원, 1927년 한국독립당 촉성회 연합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28년 5월에는 중국 동삼성 지역의 전민족유일당조직회에 참석해 지역 내 항일민족운동 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활동했다.
이처럼 박건병 선생은 무장투쟁을 통한 항일운동에 앞장서서 활동했으나 그해 구심점이던 박용만 선생이 피살되면서, 선생을 포함한 세력은 큰 타격을 입고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이에 선생은 북경을 떠나 정의부의 근거지인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으로 이동, 정의부 교과서 편찬위원과 동향수하자(東珦水河子)의 계림(鷄林)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을 통한 구국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1932년 1월 10일 괴한에게 피살당하며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만다. 당시 사건을 알린 보도는 선생의 죽음을 단순 강도 사건이 아닌 사상 충돌로 인한 표적 암살, 혹은 그 일대에서 활동하던 공산당유격대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리어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2022년 11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 안타깝게 잊힌 독립운동가, 이제라도 빛 볼 수 있기를
박용만 연구자인 한애라 선생과 조정미 상명대 연구교수는 ‘강호기협전’과 ‘광악산’을 비롯해 박건병 선생이 독립운동 중 언론에 발표한 기고문과 연설문 등을 모아 현대문으로 번역, 문집으로 엮어낼 계획이다.
11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두 연구자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 박용만 선생의 첫 저서이자 대표작 ‘국민개병셜’을 114년 만에 역주로 발간하기도 했다.
두 연구자가 박건병 문집 발간을 추진하는 이유는 잊힌 독립운동가의 업적과 활동이 뒤늦게라도 제대로 조명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애라 연구자는 “박건병은 독립운동사와 국어학 분야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지만, 박용만 선생 피살 이후 안타깝게도 역사에서 잊혀지고 말았다”며 “그의 빛나는 업적이 다시 세상에 드러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정미 상명대 연구교수는 “일제강점기 작가들의 문학·출판 활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당시 한 독립운동가가 무협소설을 직접 번역해 신문에 연재하고 대중에게 소개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선생의 문학적·사상적 함의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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