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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회생> 스틸컷
ⓒ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김면우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회생>은 법무사 아버지의 빚을 함께 갚기 위해 8년째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인근에서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법무사 김충관씨는 의뢰인들의 개인 회생과 파산 문제 해결을 돕는 동안, 자신 역시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평생 갚아도 모자랄 정도의 막대한 채무를 떠안았다.
시인을 꿈꾸던 아들 김현우씨가 그 사정을 전해 듣고 사무실로 들어와 일을 시작한다. 김현우는 연출자인 김면우 감독의 본명이다. 영화는 이들의 업무와 생활,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사무실을 찾는 의뢰인들의 사연을 함께 담는다. 또한 가족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한 사람의 경제적 실패가 다른 가족 구성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남기는지 살핀다.
빚을 진 사람과 빚을 갚는 사람
경제적 채무에는 채무자와 갚아야 할 금액, 변제 조건 등이 있다. 여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법률은 이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누가 어떤 책임을 얼마나 부담해야 할지 판단한다. 하지만 채무자와 실제로 돈을 갚는 사람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 내에 경제적 위기가 발생하게 되었을 경우, 다른 구성원이 개입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이 작품의 감독이 그렇다. 그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경제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발생한 채무였다. 당시 함께 일하던 사무장의 월급이 밀리기 시작하자, 대출로 이를 정리하고 김현우씨가 사무원이 됐다. 원래 꿈꾸던 삶을 미루고, 아버지의 문제를 자신의 노동으로 함께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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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사용한 시간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데에서 시작된다. 채무의 일부분은 변제를 통해 줄일 수 있지만, 이미 사무실에서 보낸 8년의 시간과 앞으로 얼마나 더 필요할지 알 수 없는 담보될 시간을 없는 셈 칠 수는 없다. 그 시간 동안 얻을 수 있었을 다른 기회와 선택할 수 있었을 삶의 가능성을 모두 포기한 것이다.
물론 그 삶을 일방적으로 아버지에게 빼앗긴 시간으로 규정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들에게 도움을 요구한 적이 없었고, 아들 또한 처음부터 뚜렷한 결심으로 나섰던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두 가지 복잡한 심리가 놓인다. 아버지를 향한 애정과 그로 인해 삶이 달라졌다는 원망 같은 것이다. 그 사이를 오가며 영화는 가족의 헌신을 아름다운 미담이나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한다.
▲ 제1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회생> 스틸컷
ⓒ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법무사 사무실의 의미
중심 공간이 되는 법무사 사무실은 부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두 사람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그곳에 존재하게 된 이유와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서로 다르다. 이 차이는 직장 동료이면서 가족이라는 이중적인 관계를 만들어 낸다. 아들이 아버지의 사무원으로 일한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를 형성한다. 업무적 갈등이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봄과 원망 같은 업무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언젠가부터 분노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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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라는 사적 관계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이 하나의 공간에 집약되면서 서로의 거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셈이다.
극 중 노동의 의미가 확장되는 지. 역시 여기에 있다. 아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사무실의 수익을 위한 활동이면서 가족의 경제적 문제에 대응하는 행위이다. 동시에 아버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동일한 노동이, 생계와 책임, 애정이라는 서로 다른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다. 채권자들을 모두 불러 이자 지급만 멈춰준다면 평생을 바쳐서라도 원금만큼은 아들인 자신이 갚겠다며 의지를 피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는 가족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도 중요하게 다룬다. 아버지의 채무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파헤치기보다 그의 선택을 삶의 궤적 속에서 이해하려 한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와 맺어온 관계를 조명하고, 비구니인 어머니가 외조부의 빚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절로 돌아가야 했던 사연도 다룬다. 아들인 감독이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를 경험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지금의 문제가 한 번의 경제적 실패로만 시작되지는 않았다는 。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가족사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 문제의 원인을 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채무를 만든 건 분명 한 사람이지만, 그 선택에 이르게 된 개인의 사정은 훨씬 복잡하다. 아버지 또한 이전 세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 역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산다.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인 '카르마 Karma'를 떠올리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은 행위와 그 결과의 관계를 다루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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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가족사를 여기에 투영해 보자면, 이전 세대의 선택이 다음 세대에 남기는 영향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영화가 두 내러티브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차로 동시에 들여다보고 있듯이, 과거를 이해하는 일과 현재를 살아가는 일은 동시에 진행된다.
▲ 제1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회생> 스틸컷
ⓒ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회생> 이후에 남는 것
영화의 제목이 가리키는 '회생'에는 경제적인 의미와 삶의 변화라는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법률적 절차를 통해 채무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달라져 버린 인간관계나 상실한 자원과 기회까지 모두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법무사 사무실을 찾은 의뢰인들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전과 달라진 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 또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변화한 관계를 마주해야 한다.
감독은 아버지로 인해 원래 꿈꾸던 삶을 미루어야 했지만, 그 시간이 결국 자신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두 사실은 결코 모순되지 않으며, 이미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아들이 자신의 삶을 새롭게 구성한다. 그런 토대 위에 이야기가 쌓이기에, 빚을 갚기 위해 함께 일하는 부자의 관계에는 애정과 책임이 존재한다. 동시에 한 사람의 경제적 실패가 다른 가족 구성원의 삶까지 바꾼 현실을 담아낸다.
이 영화의 완성이 가족의 채무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고, 부자 사이에 남은 문제를 지워주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그 지난한 시간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지나온 8년의 시간 속에서 발생한 상실과 경험 모두를 함께 바라볼 때, 비로소 이후의 시간 속에서도 계속될 삶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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