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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현
얼마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동포 어르신들을 위한 클래식 인문학 강의를 했다. '위대한 삶, 위대한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쇼팽과 베토벤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음악을 직접 연주해 들려드리는 자리였다. 수십 년 전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오신 분들을 앞에 두고 두 작곡가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날따라 '고향'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어느덧 한국에는 추석이 다가온다. 멀리 있어 찾아갈 수 없는 고향, 다시 돌아가도 예전과 같지 않은 풍경, 보고 싶어도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추석이 가까워지면 평소 마음 깊숙이 넣어두었던 얼굴과 장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날 강의에서 처음 만난 음악가는 쇼팽이었다. 1830년, 스무 살의 쇼팽은 더 넓은 유럽 무대에서 음악가로서의 길을 찾기 위해 고향 바르샤바를 떠났다. 아마 그때의 쇼팽은 그것이 고향과의 마지막 인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폴란드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의 지배에 저항하는 '11월 봉기'가 일어났다. 함께 여행하던 친구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는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며 폴란드로 돌아갔다. 쇼팽 역시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그를 만류했다. 이듬해 봉기는 진압되었고 바르샤바는 러시아군에 함락되었다. 잠시 떠나는 여행이라 생각했던 길은 그렇게 기약 없는 이별이 되었다.
쇼팽은 이후 파리에 정착했다. 유럽의 귀족과 예술가들이 그의 음악에 열광했고 그는 당대 가장 사랑받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도 고향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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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은 결국 살아서는 다시 폴란드 땅을 밟지 못했다. 1849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죽음을 앞둔 쇼팽은 자신의 심장을 고향 바르샤바로 가져가 달라는 뜻을 남겼다. 그의 몸은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지만, 누나 루드비카는 동생의 심장을 폴란드로 가져갔다. 오늘날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의 기둥 안에 안치되어 있다.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났던 청년은 살아서는 끝내 돌아가지 못했고, 죽어서야 심장만은 고향에 돌아갔다.
그 이야기를 들려드린 뒤 나는 쇼팽의 녹턴 20번을 연주했다. 쇼팽이 스무 살 무렵 남긴 이 작품은 그가 바르샤바를 떠나던 젊은 시절의 음악이다. 이 곡이 훗날 겪게 될 망명 생활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쓴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을 알고 난 뒤 듣는 음악은 때때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용히 노래하듯 시작하는 선율을 연주하며 나는 객석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을 바라보았다. 수십 년 전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고, 이곳에서 일하고 자녀를 키우며 수많은 계절을 보내신 분들. 그분들에게 고향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향도, 그곳의 사람들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은 자연스레 떠나온 곳을 향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이 언제나 고향만은 아니다. 때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잃어버린 예전의 나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날 두 번째로 만난 음악가 베토벤의 삶이 그랬다.
서른을 전후한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음악가에게 가장 소중한 청력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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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늘어났고, 그는 자신의 상태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도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베토벤은 훗날 '월광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게 되는 피아노 소나타를 썼다. 그날 나는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며 베토벤이 견뎌야 했던 시간을 생각했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사람이 그 당연함을 조금씩 잃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02년,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동생들에게 긴 글을 남겼다. 청력 상실로 인한 고통과 고독,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절망을 고백한 이른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아직 자신에게 남아 있는 음악이 그를 다시 삶으로 붙잡았다.
쇼팽이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면, 베토벤은 .. 사라져가는 소리의 세계와 마주해야 했다. 한 사람은 떠나온 곳을 그리워했고, 한 사람은 잃어가는 것을 붙잡고 싶어 했다. 시대도 삶도 달랐지만, 그들이 겪었던 감정만큼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이별을 경험한다. 떠나온 장소와 멀어진 사람이 있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있다. 그래서 쇼팽과 베토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위대한 작곡가'라는 이름보다 먼저 한 인간이 보인다. 그들도 우리처럼 그리워하고, 좌절하고, 외로워 하면서 자신의 하루를 살아냈다. 수 백년 전 그들의 음악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어쩌면 그 안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석이 다가온다. 쇼팽과 베토벤의 오래된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작곡가의 이야기를 너머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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