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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전문가 안동현 서울대 교수
조민근 논설위원
요즘 금융시장의 화두는 ‘고금리의 귀환’이다. 주요국의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데다 빅 테크들의 경쟁적 투자 수요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전 세계 장기 금리는 고공행진 중이다. 들썩이는 물가에 한국은행과 일본은행(BOJ) 등 중앙은행들은 긴축의 고삐를 죄고 있다. 고심을 거듭하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까지 지난주 정책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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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투자기구 우후죽순, 교통정리 필요
나눠먹기와 규제가 혁신기업 성장 막아
증시 부양 조급증은 급변동 부추길 뿐
발행시장 되살려야 생산적 금융 가능
」
때마침 정부 경제 콘트롤타워의 교체도 시작됐다. ‘2기 경제팀’의 항로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금융·자본시장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인 안동현(62)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세계 금융시장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한국 경제 역시 변곡.에 섰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정확대·증시부양 정책 등에서 드러난 조급증을 내려놓고 보다 정교한 설계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적 인플레’에 국가부채 위험 부각
Q : 전 세계적으로 장기 금리 상승세가 가파르다. 결국 미 연준도 금리 인상에 나섰는데.
A : “국제 금융시장은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국가 부채를 바라보는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다. 미국 국채 금리는 1980년대 이후 지속해서 하락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반등했다. 이번에도 일시적 현상일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빗나갔다. 이제 투자자들도 인플레를 확실히 구조적인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저물가를 지탱해 온 글로벌 공급망이 예전 상태로 복구되기 어려운 데다 고령화 등에 재정 수요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니 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장관이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금리를 끌어내리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Q : 이른바 채권시장의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인가.
A : “그간은 인플레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국가 부채가 늘어도 돈을 찍어 갚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 전제가 바뀌었다. 일본 엔화 가치의 폭락은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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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막대한 국가 부채에도 엔화는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오히려 가치가 폭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이 재정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안전자산 신화도 깨지고 있다.”
기업·가계 직격탄…양극화 심화 우려
Q : 고물가·고금리가 구조적이라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을 텐데.
A : “한국은행이 연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여전히 미국보다는 낮다. 하지만 10년물 국채 금리는 미국과 엇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서 있다. 시장 금리에 개입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미국보다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10년물 금리는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 30년물 금리는 가계의 자금조달 비용을 상징한다. 고금리 추세가 이어지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한계 상황에 봉착하는 곳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 가계의 빚은 고정금리 위주지만 우리는 변동금리의 비중이 높다. 금리 인상의 충격도 그만큼 빠르게 가계에 미친다는 의미다. 기업과 가계의 양극화도 심화할 우려가 있다.”
Q : 정부는 미·일 등에 비해 재정 형편이 상대적으로 낫다며 확장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A : “우리는 비기축통화국이란 。을 항상 염두에 두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나랏빚을 갚자는 얘기에 ‘긴축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식으로 반응하면 불신만 커진다. 물론 쓸 곳에는 써야 한다. 다만 어디에 얼마나 쓰고, 부채는 어떻게 갚아갈 것인지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해 시장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또 같은 돈이라도 잘 써야 한다. 예컨대 소비쿠폰 같은 이전 지출의 승수효과는 0.2 정도에 그친다. 정부가 100원을 나눠주면 20원만 더 쓸 뿐, 80원은 자기 돈을 써야 할 곳에 쓰는 대체 현상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지급 범위를 줄여 한계소비성향이 큰 하위층에 집중했다면 그나마 더 나은 효과를 거뒀을 것이다.”
Q : 반도체 초과 세수의 용처를 놓고 논란도 있었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을 편성해 투자에 쓰겠다는 계획인데.
A :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방향성은 맞다. 국가가 전략산업 투자를 주도하는 것 역시 글로벌 트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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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규모가 워낙 커진 데다 승자독식 게임으로 가면서 민간의 역량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컨트롤타워와 명확한 설계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대응기금뿐 아니라 이번 정부 들어서만 국민성장펀드, 국부펀드, 한미전략투자공사 등 각종 투자기구가 생겨났다. 그런데 기존에도 정책금융은 부처마다 하나씩 관리할 정도로 많았다. 각 정권을 거치며 그때그때 추가하는 방식으로 만들면서 생겨난 문제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부분에는 지원이 중복되고, 어떤 부분에는 공백이 생긴다. 또 정부의 지출이 커질수록 민간의 투자는 오히려 위축되는 구축 효과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누군가가 틀어쥐고 제대로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Q : 그처럼 많은 정책금융을 동원했지만 혁신적 대기업들이 탄생하지 못한 이유는 뭔가.
A : “우리의 벤처 육성 정책은 30년 가까이 이른바 ‘온정주의적 자본주의(paternal capitalism)’에 빠져있었다. 사자가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듯 엄혹한 시장 논리로 옥석을 가려야 하는데, 정책금융은 감사원 감사 등을 의식해 ‘n분의 1’로 자금을 쪼개어 연명시키는 방식으로 운용됐다. 대성할만한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거대 기업으로 키워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없었다. 기껏 살아남은 중견·벤처기업들도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주저했다. 대기업 집단으로 진입하는 순간 층층이 쌓이는 규제 폭탄을 맞게 되니 ‘규제 유예 구간’에 안주하려는 유인이 생긴 것이다.”
Q :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투자자금을 마련하는 통로가 증시다. 정부도 생산적 분야로의 ‘머니무브’를 강조하며 독려해왔는데.
A : “증시로 들어오는 자금이 신규 투자로 이어지려면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등 발행시장이 활성화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유통시장에만 머무를 뿐 생산적인 금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유상증자를 시도하다간 주주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주주들이 일시적 주가 하락을 우려해 증자를 꺼리는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 증시의 경우 기관투자자 중심이라 비교적 설득이 용이하다. 과거 기업들이 주주의 반발을 피해가기 위해 쓴 게 쪼개기 상장과 중복 상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편법이 제도적으로 막히면서 증시에서 투자자금을 조달할 길이 묘연해졌다. 이대로 두면 기업도 투자자도 모두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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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도 그간 투자자 설득과정에 다소 소홀했던 면이 있었던 만큼 보다 명확한 청사진을 내놓고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원칙 흔들린 연기금, 안전판 역할 못 해
Q : 연초 급등했던 코스피가 이후 급변동을 거듭하며 후유증도 컸다. 정책적 과욕이 너무 컸던 건가.
A : “애초 ‘코스피 5000’처럼 주가지수 자체를 정책 목표로 삼아선 안 됐다. 주식시장은 가연성이 높은 인화 물질과 같다. 정책 당국이 불을 붙일 수는 있어도 일단 불이 붙어 투기 심리가 작동하면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대표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을 연달아 끌어올린 것이다. 연기금은 주가가 급등할 때 주식을 팔고, 폭락할 때 사들이는 리밸런싱 방식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자산배분 원칙을 흔드는 바람에 정작 필요할 때 자정 기능을 살리지 못했다. 지수 고。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도입한 것 역시 패착이었다.”
Q : 이른바 반도체 ‘초과이익’ 배분을 놓고 주주와 노조 간 갈등도 노출됐다. 이른바 ‘N % 성과급’이 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양상인데.
A : “노동계나 일부 정치권에서 말하는 초과이익은 사실 그 정의조차 불분명하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이익이 났을 때는 성과급을 받아가면서, 손실이 날 경우의 위험은 전혀 부담하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다. 일종의 ‘콜옵션’ 형태다. 그런데 기업과 주주의 입장에선 위험부담은 다 지고, 이익은 나눠야 하니 위험 회피적(risk-averse)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장기 연구개발(R&D)이나 투자에 소극적이게 돼 미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업의 특성상 이익 변동성이 극심해 내부 유보금 확보가 절실하다. 불황을 견디면서 설비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업의 생존 자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안동현=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있으며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퀀트 전략본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론과 실무 양면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본시장연구원장,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정책 분야에서도 활약했다. 최근에는 산업통상부가 인공지능(AI) 시대 산업 성장 방안과 보상 체계 등을 논의하기 위해 조직한 전문가 연구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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